백두산 산행후기 , 김건환 총무 글 (8/6)

1. 출발하기전
2. 첫째날 (2001.8.2)  (인천~장춘~연길~백산대주점)
3. 둘째날 (2001.8.3)  (백두산 매표소~소천지~장백폭포~차일봉~천지~차일봉~소천지)
4. 셋째날이후 (2001.8.4~5)  (백산대주점~연길~용정~도문~연길공항~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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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발하기전

날씨는 화창하지는 않았지만, 맑은 공기가 초가을을 연상케 하였다.
설레이는 마음과 약간의 두려운 마음은 매번 여행시 느끼는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항상 가보고
싶었던 원정산행, 그것도 민족의 상징인 백두산행이란 것 때문에 앞에 가졌던 모든 감정보다는
무언가 꼭 해 보고야 말겠다는, 그리고 산정상에 올라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산우회 맴버중 강북에 살고 있는 회원은 나를 포함하여 김제구, 홍인식, 원승환, 고경용,
김세균 등인데 이번 산행에서 고경용은 여권관계 미비로 참가하지 못했고, 김제구, 나외에
나머지는 부부가 함께 가기로 했다.
마침 김제구회장이 회사차로 공항까지 간다고 하여, 상계동 전철역에서 8시에 만나 같이 가기로
약속을 하였고, 집사람이 약간 이르게 약속장소에 바래다 주며, 재미있게 놀다오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오직 제일 좋아하는 취미가 등산이기에 처음에는 가족간 마찰이 좀 있긴 했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포기하였는지 또는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인지 별로 싫어하는
기색이 없어 조금 불안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사이 보따리 싸지는 않겠지..
8시가 조금 지나도 차가 나타나지 않자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5분 정도 기다리니 원승환부부와
회장부부가 스타렉스 차를 타고 나오면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차안을 보니 회원들에게 나누어줄 여행용 세트와 씨레이션 박스로 꽉 차있어,그것들을 준비하느라
꽤나 고생들 했구나 생각하면서, 인천에 직장이 있다는 핑계로 총무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공항에는 의정부와 일산을 거쳐 외곽순환로를 이용, 10시경에 도착해보니 몇몇이 나와 있었다.
모이는 장소는 9번 Gate 안쪽 G 와 H 사이이고, 시간은 10시 20분 이었는데 그 시간이 되니
거의 다 모였는데, 정호균부부가 10분정도 늦은것 같다.
역시 일반 단체 여행을 떠날때 보다는 집합시간 준수로 보아 '이번 여행은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 찾으러 다니는데 가슴 졸이는 일은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며 퍽이나 안도했다.
말이 30명이지 잡다한 사람들 30명을 인솔하여 여행을 하다보면 별별 사람이 다 있게 마련이어서
꽤나 해프닝이 많이 발생하는데, 같은 수준의 그것도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기에
단체여행의 가장 기본적인 시간준수 만큼은 어렵지 않게 지켜주리라.
호정여행사와 총동창회에서 마련해 준 여행용 선물세트와 씨레이션, 김기흔회원이 가져온
팩소주 2박스를 각자에게 분배하고, 11시경 수속을 하여 면세점에서 각자 술이나 담배들을
사고, 34번 게이트에서 탑승을 하기위해 대기했다.
인천공항이 생기고는 처음 출국하는지라, 공항시설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몰랐었는데 꽤나
잘 되었다. 홍콩의 신공항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다. 다만, 면세물품이나 기타 편의시설
이용이 너무나 비싼게 흠이다. 나는 여행을 할 때 거의 돈을 쓰지 않는 스타일이고, 담배나
술도 평소 먹고, 피던 것만 사는데, 오병연이 '다비도프, 다비도프' 하길래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디스담배는 8불인데 이 담배는 물경 15불이나 했지만 하나 샀다.

2. 첫째날 (인천~장춘~연길~백산대주점)

비행기는 장춘을 향해 정시인 12시 20분경에 출발, 현지시각 13시10분경에 도착했다. 한국과
동북3성과의 시차는 1시간이니까 1시간 50분 소요된 시간이다. 기종은 MD-8, 10년도 전에
제주도나 부산 등지에 가는 비행기 비슷했다. 장춘공항은 국제선과 국내선의 출입구 거리가
약 200m 정도 거리 사이에 두고 있는 보통의 국내의 LOCAL 비행장과 비슷한 (광주공항정도)
군용비행장 겸용 공항이다.
입국허가를 받는데 약 30분정도 소요되었고, 공항밖에서 약 1시간정도 어슬렁 거리다 역시
비슷한 기종의 비행기를 타고 연길로 출발(15시10분경:이하 현지시각), 약 40분정도 날아
15시 50분경에 도착했다. 연길공항은 장춘공항보다 약간 컸으나 역시 국내 LOCAL 비행장 정도
수준이고(김해, 제주공항은 양반이다.), 또한 군용비행장 겸용이다.
수속을 끝내고 공항 출구로 나오니 환영객들중 경복산우회 깃발을 펼쳐들고 있는 후배를
만났다. 항상 총동창회 때나 총동창회 산행시 자주 나오는 후배다. 코미디언처럼 행동하고,
이주일 춤을 잘추는 후배다. 이름은 신XX 이라던가!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니 일때문에 왔는데,
어제 40회 선배들과 술한잔하고 선배들은 먼저 백두산으로 떠났고, 자기는 우리들과 합류할려고
있었다고 한다. 반갑기도 했지만 조금 꺼림직했다. 동질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배타적인 사고인지는
몰라도 여행에 있어서의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한 첫번째 요인은 마음의 편안함이고, 이 편안함은
같이 여행하는 구성원들의 동질성이다. 비록 그것이 경복 44 산우회든지 아니면 호정여행사에서
주관하는 단체 여행객이든 처음부터 같이 시작되지 않고 중간에 예고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쑥
한두명이 합류되는 그런 여행만큼 어색한 여행은 없으리라. 그러나 어쩌랴 남도 아니고 후배인데..
이곳에서 31회 선우천선배가 백두산 산행 격려금으로 보내주신 10만원을 후배로부터 받았다.

날씨는 잔뜩 찌푸려있고,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서울서 출발할때 TV에서 장마전선은
한반도와 만주국경사이에 걸쳐 있다는 뉴스를 들어서 그런지 혹시나 백두산 근방에 가면 장마비가
쏟아지지나 않을까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연길에서 숙소인 백두산 근처에 있는 백산대주점(0433-571-8777)까지 운송할 버스를 기다리는데,
보통의 단체여행에서는 대개 공항에 도착하면 버스가 대기하여 인원점검이 끝나면 곧바로 출발하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이것도 만만디인가?? 나중에 사정을 들어보니 다른 팀을
한탕 바래다 주고 오느라고 늦었다고 한다. 첫날부터 삐걱거린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약 30분정도 기다린후에 리무진 버스에 올라타고 연길 중심부에 있는 식당으로가
중국식으로 식사를 했다. 식당이름은 기억에 없고, 전통중국음식도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식 중국음식도
아니고, 연길식 중국음식인가 보다. 맛이 별로다. 그래도 여행을 할 때는 많이 먹어야 체력이 유지된다는
경험하에 보통때보다는 많이 먹었다. 물론 고량주 한잔을 곁들여서..
숙소인 백두산대주점으로는 대략 17시정도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 몇분후 가이드하기위해 함께 출발했던
43회 권문기선배(호정여행사 사장)의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후배가 같이 여행을 하는것은 좋으나
여행경비와 사고시 보험문제 때문에 후배에게 각서를 요구하는 바람에 후배와의 이국땅에서의 해우는
짧은 해프닝으로 끝나 후배는 버스에서 하차하고, 우리 일행은 BUSINESS의 냉정함을 새삼 느끼면서
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백두산을 향해 처덕처덕 내리는 빗속을 뚫고 나아갔다.

참, 현지 가이드 소개를 하지 못했다. 가이드가 두명인데, 한명은 김용이라는 23살 먹은 보통보다는
키가 큰 잘생긴 조선족 청년이고, 하나는 예쁘장한 연변 대학 1년생이라는 성이 백씨라는 아가씨였다.
현지 소개및 가이드는 김용이라는 가이드가 주로 했는데, 인터넷으로 유머란을 많이 보았는지 썰렁한
얘기도 곁들여 가면서 연길 및 연변자치구에 대해 잘 소개해 주었다.
연길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돌로 만든 호랑이인데, 호랑이 머리를 한국을 그리는 마음으로 남쪽으로
돌려 놓았다는 소개도 받았고, 연길 및 연변자치구에서는 법으로 모든 간판은 조선말이 우선적으로
쓰이고, 그 밑 또는 옆에 한문으로 쓰게 정해져 있다고 한다. 새삼 동포에 대한 정이 생기기는 하는데
그래도 강원도 산골 할아버지나 충청도 산골 아줌마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수 없는
한민족의 배타적인 성격인가 보다.
가이드의 썰렁한 유머를 들으면서 벌써 캄캄해져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달려가길 2시간 30분정도..
잠깐 졸았는데 휴게소라고 용변볼 사람은 보고, 휴식할 사람은 휴식하라고 차가 정차하였는데,
이게 웬 휴게소?? 천막 몇개이어서 쳐놓고 불도 잘 들어오지 않는데다 비까지 내려 어디 유격훈련시
담력훈련장 비슷한 곳이 휴게소라니.. 화장실은 급조된 예비군 훈련장 화장실처럼 천막 몇개 앞뒤로
쳐놓고 용변을 보라고 하니 준회원들께선 질겁을 하고, 그나마 깜깜하니까 그렇지 벌건 대낮에는 도저히
볼일을 볼수가 없을 정도였고, 파는 물건들이란 과일, 관광용 상품, 그리고 장백산 장뇌. 장뇌 2뿌리에
일만원이라고.. 차라리 더덕이나 좀 팔지.. 밤에 소주한잔 하려면 그런것이 제격인데..
15분정도 있다가 다시 출발, 자는둥 조는둥 하다 11시 10분경 드디어 숙소에 도착하여 부산하게 미리
짜놓은 룸메이트 별로 열쇠를 나누어 주는데(물론 부부는 같은 룸메이트였다), 40회 선배 몇분이 와서
환영해 주었다.
당신들은 비만 쫄딱맞고, 천지의 천자도 보지 못하고 내려왔으니 우리들은 꼭 보라고(진심으로 하는
말이지 뭔지는 모르겠고..), 하여간 반가웠다. 후배보다 선배가 반가운 것은 아마도 36회 선배님들이
우리 44회 산우회 회원들에게 잘해주셔서 그런가 보다.
하여간 방배정을 받자마자 술한잔 하자는 말도 없이 각자 방으로 직행, 씻고 자기에 바빴다. 내일의
날씨가 좋기를 걱정할 만큼 체력이 남아 있지를 않은것 같다. 이날만큼은 코고는 룸메이트때문에 잠을
잘 못잤다는 회원은 없었으리라. 8인의 신부와 같이 온 회원들은 피곤해서 그냥 잤을까 몰라??
숙소소개를 못했다. 말이 호텔이지 광화문 뒷골목 여관을 생각하면 딱이다. 일산의 러브호텔은
별 4개 정도는 표시할만큼..

첫째날은 이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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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둘째날 (백두산 등정)

모닝콜 6시, 아침식사 7시, 출발 8시.
전날 가이드의 행사 일정에 맞추어 유치원생 왼손 들고 횡단보도 걷는 것같이 기계적으로 시간은 갔다.
그런데 이 모닝콜이란게 많은 여행 중 처음 겪어 보는 모닝콜이다.
오전 6시쯤에 눈을 뜨고 모닝콜이 울리기만 기다리면서 게으름을 피고 있는데, 똑똑 노크소리..
옆방의 나이가 들어서 새벽잠이 없어진 회원의 방문 노크소리인줄 알았는데, 밖에서 하는 말..
'모닝콜입니다.'(?) 이거 완전히 아날로그 방식이라. 나는 문을 열어보진 않았는데, 나중에 회원들
얘기가 노크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천원짜리 한장 흔들고 있더라고.. 아마도 팁을 달라고 했나 보다.
팁을 준 회원이 없었는지, 그 다음날에는 전화로 모닝콜을 정상적으로 하였다.
식사는 역시 별볼일 없었고, 집에서 싸온 김치, 김, 고추장 등에다 밥을 먹는 회원들이 많았다.
백두산으로 떠나기전 밖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줌마, 아가씨들이 접근하여 저녁에 놀러오라고
한다. 노래방도 있고, 술도 같이 먹을 수 있고, 돈만 많이 준다면(U$100) 2차도 할 수 있다고..
생김새들은 영 아니올시다고, 몇달 감방에 있다가 나왔다면 모를까, 맨정신에는 같이 놀고 싶은 충동이
억지로라도 생기질 않는다.
이럭저럭 보내면서 8시30분경 백두산으로 출발했다. 중간에 한식당에서 도시락을 상추와 곁들여 급식을
받았는데, 도시락은 국물이 줄줄 흐르고, 어느 도시락에는 젓가락도 빠졌고, 그래서 국물이 새지 않도록
비닐을 얻어 다시 싸느라 법석을 떨었다.
날씨는 어제의 날씨와는 영 딴판. 맑은 하늘이 가끔 보이고, 기온도 25℃정도 되는것 같다.
일반적으로 천지를 볼 확률이 10% 밖에 되질 않는다는데, 매우 상쾌한 아침이어서 아무래도 우리 일행은
그런 행운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백두산 매표소로 가는 길.. 매우 아름다운 길이었다. 왕복 1차선 도로 양쪽에 하늘로 쭉뻗은 미인송
지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경치와는 사뭇 달라 이국적인 냄새까지 풍겼다. 아마도 도로가 좁은 탓이었을까?
도로가 넓었다면 홍천에서 삼봉약수를 거쳐 구룡령 넘는 56번 도로의 낙엽송 지대와 같은 경관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매표소에 도착해보니 많은 차들이 벌써 와 있었다. 거의가 다 한국사람이다.
간혹 싸우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중국인들. 코쟁이는 눈을 씻어봐도 보이질 않는다.
이곳 화장실도 역시나.. 벽돌로 지어놓긴 하였는데, 여자화장실은 들어가서 보질 않아 모르겠으나,
남자화장실은 역시 앞이 터져있다. 소변보는 곳 뒷쪽에 몇사람이 쭈구리고 용변을 보고 있는데,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이 큰 관광지에 무슨 고집인지, 자기네 식대로 화장실을 꾸며 놨으니
관광을 올려면 오고, 말라면 말라는 식이다. 나한테 이곳을 불하해 주었으면 어림잡아 몇배는 더
수입을 올릴 수 있을텐데...
표를 사고 통과하는데 30분정도가 소요되었다. 다시 버스로 소천지 주차장까지 20분정도 이동하였다.
이동중에 산행을 하질 않고 짚차를 타고 천문봉까지 올라가 그곳에서 20분정도 정상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보는 코스를 선택할 회원을 모집했는데, 준회원들께서 미리 겁을 먹고 그 코스를 선택하는
바람에 애꿏은 우리 회원들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마지못해 그 팀에 동참하게 되었고, 좋은 산행기회를
박탈당했다.
A조 : 짚차팀(배종화부부, 원승환부부, 홍인식부부, 허동녕부인)
B조 : 산행팀(30-7 : 23명, 허동녕은 사진관계로 A팀에 합류하지 않았음)
* 조선족 가이드와 권문기사장은 별도.

소천지 주차장에 도착시간은 대략 9시20분정도. 이곳에서 A조와 B조로 나뉘어, A조는 짚차를 타러 갔고,
B조는 소천지까지 약 10분간 올라갔다. 소천지 도착시간은 9시30분정도. 이곳에서 미리 편성한 조별로
목적지인 천지를 향해 출발했다. 1조부터 4조까지 편성했고, 맨 후미는 윤인중과 김제구회장이 맡았다.
날씨는 미인송지대를 통과할 때의 그 맑았던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비가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아, 참! 소천지는 천지의 축소판으로 조그만 연못 형태로 일명 銀環池라 한다. 이곳에는 무슨 전설이
있다는데,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10분정도 오르니 경사가 조금 급해졌다. 이때부터 조편성은 흩어지고 각자 제 갈길을 갔다.
준회원들께서는 뒤떨어지는 사람없이 일찌감치 씩씩하게 올라가고, 일부 회원들은 벌써 헉헉거린다.
30분정도 오르니, 이때부터 잡목들은 없어지고 푹신한 앉은뱅이 풀들과 잔디만 있는 언덕이 나타났다.
비는 내리다가 그치고 몇분있다 다시 내리고, 이때부터 모두 우의를 꺼내 입었다.
어떤 때는 세차게 비가 내리다가 조금있으면 개이고, 이러한 날씨는 계속되었다. 5분정도 휴식후
다시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곳에서부터 권문기사장과 정원해가 맨발로 오르기 시작했다.
(백두산 정기를 받는다나 뭐라나...)
소천지에서 1시간30분정도 올라가니 주위경관이 탁트이고, 장백폭포와 멀리 온천 주차장이 보였다.
바위는 풍화되어 금방이라도 무너질듯 위태롭게 서 있고,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낙석이 생겨 위험하다.
장백폭포의 위용은 꽤나 힘차 보였다. 白河는 계곡마다 흰 페인트가 흐르듯 길게 뻗어 있고, 어떤 흰
물줄기는 중간에 동굴속으로 들어가 버리는지 끊어져 보이질 않는다. 비의 양에 따라 그 물줄기의 양이
금새 변해 버린다. 10분정도 장백폭포를 보면서 휴식을 취한후 다시 출발. 차일봉 옆 정상에 12시20분경
도착했다. 이곳에서 천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데, 도무지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고,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산정상에는 정말 야속하게도 많은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먹다남은 음식들, 계란껍질, 나무젓가락,
팻트병 등등. 이곳에서 10분정도 정상주 한잔하면서 천지로 가자, 말자 하다가 가자는 쪽이 절대 우세.
일행은 천지로 급경사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훈남이와 제구를 기다렸는데, 10분정도 기다리니
마지막으로 훈남이가 도착. 같이 내려가려고 했으나, 훈남이가 이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비는 오고있고 날씨는 꽤 쌀쌀한데 내려갔다가 식사하고 올라오려면 적어도 2시간 이상 걸리는데,
혼자있게 하기는 너무 불안했다. 같이 있으려고 했더니 먹을것만 주고 부득불 내려갔다 오라고 한다.
할수없이 혼자 내려가기로 했다. 미안한 마음보다는 이곳에 왔다가 천지물에 발 한번 담가보지 못하고
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아쉬움이 보다 앞섰고, 사진이라도 동료들과 함께 찍어야겠다는 욕구가 더 앞선
것 같다. 집사람이 같이 와서 자기는 남고, 혼자 갔다오라고 했어도 이런 마음이 생겼을까? 하기야
훈남이가 이 정도 날씨에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도 했고..

천지로 내려가는 길은 매우 급경사 길이었다. 중간에 낙석지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돌이 굴러 사람이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우리팀도 돌이 굴러 위험할뻔 했다. 다 내려갈때까지 15분정도 걸렸고,
그곳부터 급류를 막을려고 쳐놓은 물막이 담을 따라 5분정도 가다가 드디어 천지가 보이는 평탄한 길을
10분정도 걸어 천지에 도착했다.
날씨는 정상에서 반쯤 내려오는 시점에서부터 서서히 개이기 시작하더니, 천지 주위의 산봉우리 8부 능선을
제외하고는 활짝 개이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고, 천지 물가로 가서 물을 떠먹기도 하고,
수통에 물을 담기도 했다. 일생에 한번 볼까말까하는 천지를 직접 내려와 보니 흥분된 마음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였다. 각자 서서히 구름이 걷혀가는 장군봉을 배경으로 하여 사진을 찍기도 하고, 주위 기암괴석을
쳐다보며 감탄사를 올리기도 했다. 그 기쁜 마음들이 서서히 진정되어 가면서, 얼른 밥을 먹고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들이 저마다 떠오르는것 같았다.
경복 44회 산우회기와 백두산 원정기념 플랭카드를 앞에 놓고, 단체 사진을 허동녕 사진사의 좁혀라,
앉아라, 얼굴을 돌려라.. 결혼식 사진 찍듯 몇방 찍고, 가져온 도시락을 까먹기 시작했다.
원해는 반바지 차림에 비도 많이 맞아 손, 발, 이빨까지 덜덜 떨면서도 배고픔이 뭔지.. 꾸역꾸역
먹고있고, 한쪽에서는 라면을 주문하여 유유자적 소주를 곁들여 맛있게 먹고들 했다.
천지 주변에 몇개의 천막을 쳐놓고, 라면이나 커피 등을 팔고 있는 중국인이 있었는데, 커피한잔에
인민폐 10원을 받으니까 한화로 일천육백원정도 받는것 같았다. 주위에 2∼3팀 정도가 있었는데
경남고등학교 산우회라던가 들었다. 이들은 짚차로 천문봉까지 와서 급경사 벼랑을 타고 천지로
내려왔다고 한다. 갈때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떠났는데, 개울가에 쪽다리를 걸쳐 놓은 곳을 건너 다시
온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는데, 천문봉까지는 까마득하게 여겨졌다. 우리가 다시 올라가야 할
정상보다는 더 가는것 같다.
식사가 끝나고, 산우회 총무외의 본연의 임무 - 마우회 집합. 천지마이트(또 마이트라 한다) 딱 한판
하자는 제의. 윤인중, 나, 오병연, 채희선, 정규철 다섯이 돌렸는데, 나는 2판 다 이겼다. 마지막 3판째
카드를 받아보니 형편없는 패였는데, 오병연이 4점인가 5점 불러 시작하려던 참에 일행들의 가자는
재촉에 그냥 일어섰는데, 친구를 잡고 패를 열어보니 그냥 여당이 홈런이더라.(친구는 채희선이었다)
하산길, 식사시간, 술먹는 자리 내내 오병연의 투덜거리는 소리는 끝나질 않았고..

다시 정상으로 오르는 길. 먼저 가던 영강이와 원해가 오던 방책 안쪽길 말고 바깥쪽 길이 있다고 하길래
일행 모두 따라 갔더니, 길은 없고 월담을 하여야 할 처지. 마침 다른팀 중국인 가이드가 있어 그분의
도움으로 전원 월담을 하였는데, 스릴이 만점!! 무사히 통과하고 난 후에야 스릴만점에 만족해 했다.
덕분에 쉽고, 스릴있고, 시간이 많이 절약되었지만, 사필귀정, 자승자박이라 원해는 월담을 도와주었던
중국인 가이드에게 50원을 정상부근에서 주었다 한다. 또 잊은 일이 있다. 천지를 떠나기전 도시락
찌꺼기들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지 망설였는데, 천막옆에 쓰레기 집하장이 있어 그곳에 버리려고
했으나, 꽤나 꺼림직했다. 그러나 우리의 환경지킴이 인중이가 라면파는 아저씨에게 미화20불이나
주고 대신 쓰레기를 깨끗이 치워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우리 일행 모두가 증인이 되어 주었다. 인중이가
주지 않았다면 나라도 주었을까? 아마도 주었다면 20불까지는 주지 않고, 10불정도 주었으리라.
이것이 사장과 샐러리맨의 차이!?
정상에 오르는 길은 정말 힘들었다. 식사를 하면서 먹은 술이 오르기도 하거니와, 급경사를
오르다보니 숨이 턱에 찬다. 몇걸음 안가서 쉬고, 또 쉬고.. 준회원들 조금도 뒤쳐지는 기색은
보이질 않는다. 40분정도 걸려 어렵사리 정상에 도착해보니, 다행히 훈남이는 맑게 갠 하늘 덕분에
우리들보다 더 많은 구경을 하였다고 한다. 차일봉까지 올라가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천지를 감상했고,
이곳저곳 다녔다 한다.
정말 안심이 되었다. 하늘도 우리들이 일년동안 계획하고 추진하였던 백두산행을 도와주는 것 같다.
천지를 배경으로 단체사진 또한 다시는 못볼 것같이 여러 곳을 배경으로, 개인별로 10분정도 추억을
담다가 하산하기 시작. 장백폭포가 내려다 보이는 곳까지 잘 내려왔는데, 종훈이와 희창이의 도가니가
시원치 않다는 전갈이다. 다른 회원의 스틱을 빌려 의지해가며 천천히 하산하기 시작했으나 영
시원치가 않다. 일행은 먼저 내려갔고, 나와 권문기사장이 후미를 맡아 서로 격려를 하면서 마침내
소천지에 17시경 도착하였고, 17시20분 버스에 올라타보니 짚차로 올라갔던 팀은 벌써 와 있었다.

원래 짚차로 올라갔던 팀은 경남고등학교팀과 같이 천문봉에서 천지로 내려와 우리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도저히 안개때문에 천지 구경도 못하고, 천지 내려가는 길도 찾지 못하고, 짚차를 돌려 보낸
후라 오던 길을 걸어서 내려와, 온천에서 샤워하고 쉬다가 우리와 합류했다고 한다. 그런데 원승환부부는
아직도 온천장에 있다하여 버스는 다시 산쪽으로 올라 Pick-up하러 갔는데, 일행중 온천을 하자는 사람,
말자는 사람 의견이 엇갈렸지만, 너무나 피곤들 하였는지 빨리 숙소로 가서 씻고 저녁 먹자는 대다수
일행의 의견에 따라 승환부부를 태우고 ?太念?출발했다. 이날 산행에 있어서 장원은 이상호부인, 정원해이고,
가장 많은 추억을 담아 내려온 듯한 부부는 정호균부부인듯 하고, 희창이와 종훈이가 제일 고생한 것 같다.
저녁식사는 아침에 도시락을 싸 주었던 한식당. 벌써 많은 팀들이 식사를 끝내고 Camp-fire를 하고 있었다.
식사는 역시나 별로다.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다만 동녕이가 등반완료 축하를 위해 위스키 한병을
갖고 와 각자 잔에 조금씩 부어 힘차게 "위하여"를 외치면서 한잔한 것이 저녁식사 하일라이트였을까..
날씨는 벌써 캄캄해져 식사후 삼삼오오 모여 뒷풀이 술판이 벌어졌는데, 역시 원해세상..
처음 등반팀 신청을 받을때 원해가 있어 술 때문에 혹시 준회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고
집행부에서 많은 걱정을 하였는데, 이것은 기우. 산도 제일 잘 탔고, 내려와 술한잔 하면서도 주위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입담도 있고, 기공과 수지침 때문에 기겁을 하고 도망친 일행도 있고, 하여간 오늘은
원해 날인가보다!!
천지마이트를 했으니 참새들이 그냥 지나칠리가... 느즈막하게 종훈, 규철, 병연, 희선, 나 5명이 오붓하게
욕도 없이 낄낄대면서 제구 코고는 소리를 음악삼아 새벽 3시까지 채우고야 잠을 자러 갔고,
인중, 종화, 영강 등은 저녁을 시원치않게 먹었는지 바베큐에 한잔 더 하다가 잤고, 그외 사람들은 노래방
잠깐 있다가 잤다고 한다. 나는 제구 때문에 날밤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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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셋째날 (2001.8.4)  (백산대주점~연길~용정~도문~연길공항~심양)

둘째날의 백두산행기로써 작문을 끝내려고 했으나 도무지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려니
홍천거사의 꾸지람이 또한번 올 것같고, 처음 시작도 금전적 결산만 보고하고 여행소감은 오병연 대변인에게
미루기로 하고 산우회 게시판에 결산보고만 띄웠더니, 제까닥 홍천에서 유감이니 뭐니 하는 글이 보이길래,
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 쓴 이후로는 작문을 해 본 경험이 별로 없어 망설이다가, 집행부 욕먹을까봐
시작했는데.. 하루를 망설이다 다시 시작했다. 끝내려고..

우리일행이 첫번째 방문한 도시는 장춘인데, 이 장춘은 청나라 마지막황제 '부의'가 일본의 사주를 받아
만주국을 세웠는데 그 국가의 수도였으며, 동북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중 길림성의 성도이다.

인구는 690만명 정도이고, 위치는 심양과 하르빈 중간 서북쪽에 위치한 공업도시이다. 자동차공장과 영화
제작소가 있다.

그 다음의 코스는 연길.. 우리 조선족이 제일 많이 살고 있는 도시로 소비가 제일 많은 도시중의 하나다.
예를들어 택시보유 1인당 배당율이 2위인걸 보아도 소비위주 도시임을 알수있다. 아마 한국사람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은 심양으로써 요녕성의 성도이다. 중국에서 제일 큰 상해, 그다음 북경, 천진, 중경 그다음 다섯번째
큰 도시가 심양이다. 이 심양은 옛 청나라 도읍이었다가 청나라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고 나서 지명이
봉천으로 바뀌어 불리다가, 항일전쟁 승리이후 중국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후 다시 심양으로 바뀌었다.
옛날 독립투사들이 많이 활동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 심양의 서탑지역은 'KOREA TOWN'이 형성되어 중국에서 한국식으로 놀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기도 하며,
인천에서 페리호를 타고 보따리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참고로 중국 행정구역은
성, 시, 현, 구, 진, 향으로 나누어 있다.

오전 6시 기상, 6시30분 식사, 7시30분 출발.. 오늘은 일정이 꽤 빡빡한가 보다.

오늘의 일정은 백두대주점→연길→용정→도문→연길공항→심양으로 되어있다. 이 코스 중 단체여행의
필수코스인 관광상품 파는 곳이나 중국이니까 약재 또는 보신식품 파는 곳이 한두곳 있으리라.

식사후 젖은 옷 말리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짐을 싸고 팁을 1불 방안에 놓은 후 바깥으로 나갔다. 팁은
사이좋게 전날은 제구가, 오늘은 내가 냈다. 왜 일찍 다른 사람보다 나갔냐고? 불행하게도 사정상 같이
못온 산우회원들에게 무언가 하나씩 사서 주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나갔는데 마땅히 살 것이 없다. 눈에
띄는 것이 백두산 지도가 들어있는 스카프. 이 스카프 가격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한다.
둘째날 아침에는 숙소근방에서 2장에 한화 천원하고, 백두산 매표소 입구에서는 1장에 천원, 오늘 아침에는
4장에 천원하더라. 백두산 매표소에서 몇몇이 사는 것을 보았는데 속이 좀 아플게다. 나는 사천원어치를 샀다.

7시30분 조금 지나 용정으로 출발했다. 지금부터는 시간별로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겠지?
산행시간은 꼭 따져야 하겠지만, 일반여행 일정이야 허리끈 풀러놓고 멍멍이 먹는 식으로 유유자적하면 되니까..

하여간 5시간 정도 올때는 깜깜해서 몰랐는데, 오전이니까 주위의 경관을 구경하면서 연길까지 왔다. 주위의
풍경은 여느 농촌길과 같고, 다만 우리나라는 논밖에 보이질 않는데, 그곳은 옥수수와 감자밭만 보인다.
어떤 곳은 옥수수밭이 농장처럼 넓게 심어져 있어 영화 '해바라기' 장면 중 해바라기 밭을 연상케 하는 곳도
보였다.

가이드의 썰렁한 얘기는 조금 재미있어지고, 조선족과 중국인을 구별하는 법도 배웠다. 그것은 소달구지 타는
위치에 따라 구별되는데, 달구지 오른쪽에 앉아 있으면 조선족, 왼쪽에 있으면 중국인이라 하여, 소달구지가
지나갈때마다 저마다 확인해보려고 차창 밖으로 구경을 하느라 소란해지기도 했다. 나는 소달구지 앞에서
볼때 왼쪽, 오른쪽인지 뒤에서 볼때 왼쪽, 오른쪽인지 듣지를 못해 멀뚱하게 앉아만 있었다. 그리고 어제
먹은 술 때문에 장에 이상이 생겨 벌써 화장실을 두번이나 갔다왔다. 가는 길엔 휴게소도 없고, 설사 차가
정차하여도 허허벌판에 준회원들까지 있는데 함부로 깔수도 없고, 결국 옥수수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낯선 땅에 와서 무슨 곤욕을 치를지도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까봐 언감생심 일어났다가 앉았다가하는 동작은
꿈에도 할수가 없고, 그저 배만 움켜쥐고 어서 목적지에만 도착해라 기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날벼락인가! 준회원들께서 버스 중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았는데 간간히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급기야 동녕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또 각설이 타령이나 나오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철학자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빗방울이 떨어지면 맞는구나, 밥을 많이 먹으니까 배가 부르더라, 기타 등등.. 이런
소리를 하니까 사람들이 웃더라 하며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설 하는데, 여성회원들 깔깔거리는 소리에 나도
웃음이 나올까봐 꾹 참느라 안색이 하얘질 정도였다.

만약 웃었다면?? 웃으면서 동시에 참을 수는 없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에 맡기겠다...

하여간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고, 이곳 연길에서 용정까지 30분정도 걸린다 한다. 용정가는길.. 민족의
젖줄이라고 하는 해란강이 길 왼쪽에 황토색을 띄고 흐른다. 강폭은 동부간선도로 옆 중량천 정도이고,
수량은 30미리 강수량을 보인후의 중량천 수량과 비슷해 보였다.

드디어 용정에 도착. 식당에 갔는데 마침 점심시간이라 버스가 10대정도는 와 있는것 같다. 자리가 없어
점심을 못먹을 지경이었으니까.. 겨우 점심을 얻어 먹은 후, 일송정이 바라다 보이는 용정중학교에 도착.
윤동주시인의 '서시'를 새긴 碑앞에서 그곳 학교 졸업생들마냥 의자에 앉고, 서고 해서 단체사진을 우여
곡절끝에 각자 사진기에 새겨 넣고, 윗층 용정중학교 역사 자료실을 북한말씨의 조선족 아가씨의 소개와
함께 둘러보고 나왔다.

새삼 알았던 것은 故문익환 목사가 그곳 졸업생이고, 윤동주시인과도 같이 찍은 사진도 있고, 문인환목사
부친도 그곳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항일투쟁의 본거지였던 만큼 반골기질의 사람이 많이 살았던것 같다.
이렇게하여 '토지'를 읽을 때나 '선구자' 노래를 부를 때나 나는 언제 용정과 해란강, 일송정을 한번 볼수
있을까 하는 꿈을 허망하게 이루었다. 무릇 모든 역사의 유물이나 유명한 곳을 실제 보았을 때의 허탈함은
일전에 터어키 여행시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트로이유적지를 보고 났을 때와 똑같이 느꼈을 뿐이었다.

용정을 떠나 TV에서 자주보던 중국과 북한과의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도문을 향해 떠났다. 중간 역시
예상되었던 필수코스를 들렀다. 곰의 낙원이라는 곳.. 무엇이 곰의 낙원인지? 곰의 쓸개에 강제로 바늘을
꽂아 그 즙을 추출하여 만병통치약으로 팔고 있는 곳이 곰의 낙원이라니.. 하기야 곰이 많긴 많더라.
나는 의사인양 웅담 성분에 대해 소개하는 약국 대신 화장실이 더 급했다. 걞걞

도문 가는길.. 인중이는 벌써부터 마누라 보고싶다, 보고싶다 연발이다. 벌써 여행에 지쳤나보다.
인중이 집사람이 이 글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모르겠다..

1시간10분정도 걸려 도문에 도착. 관광을 했다. 일반 시골 마을보다는 관광객이 많이 와서 그런지 큰 편이다.
그럴만한게 중국쪽에서 북한쪽을 배경으로하여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돈을 달라고 하고, 북한과 중국과의
유일하게 왕래할 수 있는 자유의 다리 비슷한 곳을 들어가려고 해도 입장료가 한화 5천원이란다. 호기심에
오천원을 내고 다리로 갔더니, 웬걸.. 밑에는 수량은 많지만 중량천 정도(또 중량천이다. 강북에 살아서 금방
연상되는게 중량천이다.)의 폭이 두만강이라고 흐르고, 그 사분의 일쯤 되는 곳까지 밖에 가질 못하게 한다.
약 30m정도쯤 갔을까? 그곳에서 사진 몇방 찍고, 그냥 나왔다. 정말 아까운 돈이다. 차라리 빤히 보이는
북한 사람들이 장사를 했다면 아깝지나 않지..

도문관광 부랴부랴 마치고, 비행기 시간에 늦을세라 연길공항으로 출발하여 스케쥴대로 정시에 도착하였는데,
보딩티켓을 끊으러 갔던 권문기사장 표정이 별로 안 좋더니, 역시 연발이란다. 약 50분가량.. 그만하면
중국 로컬비행에 있어서는 양반이지 하며 위로하고 있는데, 왠걸.. 20분 있으니 1시간30분 지연, 또 20분
있으니 2시간 연장. 최종적으로는 3시간 지연이란다. 이제 심양에 도착하면 12시가 다되니 잠이고 뭐고
없겠다 굳게 마음을 잡고, 노니 뭐하냐 하며 공항마이트를 시작, 심양에 도착하여 2시간의 여유밖에 생기질
않길래 아예 또 날밤 샜다. 아직까지도 체력은 남아 있는지 어제도 거의 잠을 못 잤는데!

겨우 비까지 내리는 연길공항을 출발. 1시간정도 비행을 한 후 심양에 도착하여 호텔까지 40분정도 걸려
도착해보니, 자정이 훨씬.. 후다닥 각자 방으로 흩어지고, 마우회 맴버들은 나와 제구방에 모였다. 제구는
결국 쫓겨나고,(나중에 굉장히 미안했다. 총무가 회장을 잘 모시지도 못하고 쫓아 내다니..) 그리고
심양공항으로 백두산 갈때 싸주었던 도시락을 아침식사 대용으로 지급받아 3시40분에 출발, 4시20분경에
도착. 시간에 맞게 5시50분경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1시간 30분정도 비행하여 정시인 8시20분경(한국시간)
도착했다. 심양공항을 출발하기 전, 백두산행 격려금을 보내주신 선우천선배님과 조재린선배님께 드릴
대나무 술을 2병 사서 승환이에게 부탁을 하고..

인천공항에서는 9시경 해단식을 했다. 말이 해단식이지 서로 수고했다는 격려와 집행부와 권문기사장에게
고맙다는 박수. 집행부가 박수를 받기에는 윤인중, 오병연동문에게 너무 미안했고, 정말 이번 산행에 있어
수고를 하여준 동문은 김제구회장, 오병연대변인, 윤인중전회장이었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산우회 회원과
이번 백두산 등반에 참가했던 모든 분들과 더불어 고마움을 전한다.

해산 후 각자 리무진버스로 집으로 갔고, 나와 제구는 노원상계행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해 보니, 11시경.
떠나기전 집에 전화를 해보니 아들녀석이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 어디있냐고 했더니 목욕하러 갔다고.
어디 출장을 갔다가 오면서 전화를 해보면 으레 목욕갔다고 한다. 다른 집도 그래?

하여간 아들녀석에게 2시간후면 도착할 것이라고 엄마한테 전하라고 하고 공항에서 출발하여 집에
도착했는데, 집사람은 보이질 않고, 또 아들녀석에게 엄마 어디갔냐고 물었더니 이번에는 시장에 갔다고..
이번에는 장 뜨러갔나? 나도 씻고 집사람을 기다리는데, 이틀밤을 자지 못했으니 얼마나 눈꺼풀이 무거운지
그냥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자버려고 저녁이 되어서야 깼다. 깨서 보니 아들녀석 얼굴은 퉁퉁 부어있고,
집사람은 아직까지 아들녀석을 노려보고 있다. 사연인즉, 2시간 후에 도착한다는 말을 아들녀석은 오후
2시에 도착한다고 전해버려 3박4일동안 헤어져 있던 기다림을 목욕하고 장뜨러 가면서 기대했는데 그만
아들의 실수로 인해 멋진 해후를 놓쳐 버렸으니...... 그날 내내 아들녀석은 엄마앞에 나타나질 못하고,
해후는 그날 밤으로 미루어야 했다. 가정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니 가볍게 보시도록..

산행 후기를 마치면서 산행에 참가한 회원들과 부득이 참가하지 못한 회원들 모두에게 그동안 같이
준비하고 추진했던 1년 동안을 돌아보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내년 아니면 후년정도쯤 또다른 해외
원정을 꿈꾸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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