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김봉기의 첫사랑

삶은 만남과 인연의 연속이던가
인연은 오래 가기도, 짧게 가기도 한다. 만남과 인연은 세상살이에 희망과 의욕을 주어 인생을 빛나게 한다.
내 친구 김봉기. 그는 착하고 성실하며 부지런하다. 잘 가꾼 첫사랑의 만남과 인연은 인간 김봉기의 인생을 빛나고
아름답게 만들었고, 그의 삶에 행복을 가득하게 안겨 준 행운의 첫걸음이기도 했다.

북악산 아래 청운동 길에
이팝나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영산홍 꽃들이 새빨간 자태를 뽑내고 있는 푸른 5월의 첫날에
착하고 성실한 명문 고교생 김봉기는 학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학교에 들어가지를 않고 서성이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방망이가 퉁탕거리고 있었다.
높고 푸른 하늘과 흰 조각구름은 오늘따라 유난히 더 아름답고 날씨는 맑고
화창한데 꿈 많은 고교생 김봉기의 청춘은 신록과 더불어 진행 중이었다.
그의 마음에는 보고싶다는 간절한 외침이 있었다.

"시간에 맞춰 일찍 왔는데 왜 아직 안보이지? 나올 때가 됐는데..."
학교 문쪽을 바라보니 등교 시간이 일러 학생들은 안보이고
무서운 훈육교사 맹동호 선생님도 아직 안보인다.

조금 더 서성이는데 드디어 그녀가 집에서 나온다.
"아휴! 진짜 예쁘네"
제 눈에 안경이다. 그녀는 명문 여고생 정영숙이다.
그녀를 보려고, 그냥 보기만 할려고, 남보다 일찍 등교하고
그녀를 보면 기쁘고 힘이 솟아 하루가 힘차기때문이다.

그녀를 처음 본 후 두차례 더 보았는데 그 뒤로는 안보면 하루가 허전했다.
"거의 매일 등굣길에 만나는데 그녀는 나를 알고 있을까?" 기대를 해보기도 한다.
봉기는 그녀를 만날려고 남들보다 더 일찍 등교를 한다.

그런지 어언간 1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보니 같은 학년에서 제일 일찍 교실로 등교했다.
담임 선생님은 그렇게 부지런한 봉기를 제일 사랑했다.
봉기는 공부도 잘했다.

학교 꾀꼬리 동산에 자주 가는 봉기는 오늘도 도시락을 들고 단짝 친구 김수일과 함께
점심 시간에 그곳을 찾아
북악산을 바라보며 점심 식사를 한다.

꾀꼬리 동산은 학교 정문 가까이에 있다.
학교 정문 앞 고급 주택에 사는 그녀를 생각하며
가끔 정문쪽을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도 가끔 정문 쪽을 바라본다.
예쁜 그녀가 혹시 일찍 귀가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어느날은 교실 창문 앞에 서서 창문 밖 정문쪽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왼쪽 어깨를 두드렸다.
뒤돌아 보니 같은 반 반장 김영록이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고있니?"
"아! 꾀꼬리 동산에 녹음이 짙어가네"

눈치 빠른 영록이 대뜸 말한다.
"너 요즘 여학생 사귀니? 행동이 상사병  걸린 사람처럼 보여, 하하!"
순간 봉기는 당황하여 손을 내저으며 극구 아니라고 변명한다.

미술 시간이다. 이원용 미술 선생님은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게 한 후
각자 자신이 그린 그림을 10명씩 앞에 나가 들고 있게 하고
선생님은 교실 뒤쪽에서 평가를 한다. 특선 후보, 입선 후보, 낙선 후보 세가지로 평가를 하는데
봉기는 맨날 낙선 후보이고 같은반 친구들 봉현수 신중덕 조경철은 맨날 특선 후보이다.
"나는 왜 미술에 소질이 없을까?"

음악 시간이다. 박주두 음악 선생님은 성질이 괴팍하여 노래를 잘못 부르면
손바닥 또는 막대기로 사정없이 학생을 때린다.
어느날 선생님이 피아노를 치고
봉기와 수일이는 피아노 양쪽 옆에 서서 그동안 배운 노래를 불렀다.

두 학생이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있는데 음악 선생님이 피아노 반주를 갑자기 멈추더니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
두 학생에게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아니나다를까 선생님이 자리에서 막대기를 들고 벌떡 일어나자마자 바로 막대기로 봉기를 때리고 그 틈새에 수일은 도망을 갔다.
다행히 선생님은 수일을 끝까지 쫓아오지는 않았다.
"같은반 친구들 채정병 한동훈 황해두는 배운 노래들을 잘 부른다고 맨날 선생님께 칭찬 받는데 나는 왜 음악에 소질이 없을까?"

독일어 시간이다. 독일어 선생님은 훈육교사 맹동호 선생님이다.
체육을 가르치다가 어느날부터 갑자기 독일어를 가르친다.
시험 시간에는 교실 교단 위 높은 탁자위에 올라가 서서 내려다보며 시험 감독을 한다.

독일어 발음이 안좋은 봉기는 봉기가 독일어를 읽으면
맨날 맹선생님이 "발음이 이상하네"하며 지나간다.
"나는 왜 독일어 발음이 안좋을까?
이상하네"

봉기는 문예반원이다. 문예반 반장은 김상배이다.
5월의 푸르름이 싱그러운 어느날 토요일 오후에
서울 시내 남녀 6개 명문 고교 문예반원들이 녹음이 우거진 꾀꼬리 동산에 모여 시 낭송회를 갖기로 했다.

봉기도 자작시 한 수를 지어 낭송 준비를 하고
그 시간에 맞춰 꾀꼬리 동산으로 갔다. 남녀 학생들이 벌써 여러명 와 있었다. 문예반장인 상배가 봉기를 반겼다.
그런데 와! 이게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가?
정영숙이 그녀 학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는가?
혼비백산 너무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영숙 앞을 지나가는데 영숙은 전혀 아는척을 안했다.
아이쿠! 실망이네.

봉기는 그로인해 다소간 슬프고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자작시 한 수를 낭송하고 연단에서 내려왔다.
영숙도 자작시 한 수를 낭송하고 연단에서 내려와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고교 2년생 봉기의 청춘의 열정은 봉기로 하여금 영숙의 옆자리에로 가게했다.

"저를 모르시겠어요?"
"실례지만 누구시죠?"
아이쿠! 봉기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거의 1년을 등굣길에서 만났는데 나를 모른다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봉기는 생생히 맛보고  있었다.

"등굣길에 거의 매일 만났는데 모르시겠어요?"
"하하! 저는 땅만 보고 다녀서 모르겠는데요"

그러나 씩씩한 봉기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
"아까 시 낭송 너무 좋고 감동적입니다. 뭉클하게 제 가슴에 와 닿던데요"
솔직히 봉기는 그녀의 시 낭송 듣기보다는 그녀와 인연을 맺는 방법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 낭송은 건성으로 들었다.

"다음 주 토요일 2시에 저의 학교 앞 빵집에서 만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이 말을 들은 영숙이 봉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죠. 꼭 잊지 말고 만나요"
와! 의외로 너무 상냥한 영숙이 진짜 고마웠다. 상상 밖의 일이 오늘 일어난 것이다. 봉기에게 생전 겪어보지 못한 기쁨이 몰려왔다.
귀가하여 도무지 식사 생각도 없고 저녁에 잠도 안왔다.
오늘밤 때마침 보름달 달빛이 휘영청 봉기 방 창문을 통해 그윽하게 비추어 청춘 김봉기의 마음을 가득히 행복으로 채웠슴은 물론이다.

그렇게하여 일주일에 한번씩 토요일에 빵집에서 만나 주로 길을 걸으며 데이트를 즐겼다.
봉기는 용돈이 부족해 모친께 사정하여 그런대로 채웠다.

그런지 대략 두달만에 영숙이 백혈병, 즉 혈액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였다.
초기에 발견되었지만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하는 위험한 병이었다.
영숙의 부친은 출판사와 인쇄소를 운영하여 집이 부유했다.
병원비 걱정은 없어도 영숙은 1년 휴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영숙이 치료를 받고 봉기는 고교를 졸업하고 치의과 대학에 입학하였다.
영숙은 다행히 완치가 되어 고교에 복학한  후 졸업하고 간호과 대학에 입학했다.
영숙이 고교 시절 1년 휴학을 해서 대학 학년은 봉기가 1년 선배였다.

봉기는 병역의무 해결을 대학 졸업 후 군의관으로 갈 계획이었으나 대학 3학년 말에 민주화 운동 데모 앞장서다가 경찰에 사진 찍혀
사병으로 강제 징집 당했다. 봉기의 고교 동기동창 친구 박창현 역시
민주화 운동 데모하다가 비슷한 시기이지만 조금 일찍 경찰에 사진 찍혀 강제 징집 당했다.

군대 생활 3년 영숙이 기다려 줄까?
사귄지 3년이 넘었는데 기다려 줄까? 요즘 세태를 보니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봉기는 입대 전 영숙에게 기다려달라고 말도 안 했다.
영숙은 군대 훈련소로 입대하는 봉기를 기차역에서 눈물로 전송하였다.

당시 군대생활은 기합과 폭력이 난무했다. 그래도 봉기는 잘 참고 견디었다.
영숙으로부터 거의 일주일에 한번은 편지가 왔다.
편지가 올때마다 군대 내무반원들은
봉기를 엄청나게 부러워했다.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 간호사로 취직한 영숙이 어느날
사전 연락도 없이 면회를 왔다. 왠 일인가?
영숙의 부모님들이 대학 졸업 일년이 되어 가는데 왜 시집 안가냐고 독촉이라서
견딜 수가 없단다. 참으로 난감하다.
봉기는 제대 후 복학 후 3년을 더 대학을 다녀야 하는데...

봉기가 군대 제대를 하고 대학에 복학했다. 영숙은 부친 친구 아들이 대기업 재직 중인데 거의 강제로 부친이 결혼을 강요했다.
봉기는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어느날 영숙이 우리가 도망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착하고 성실한 봉기는 그럴 수는 없었다.

영숙의 부친을 만나기로 했다.
영숙의 부친을 만나니 의외로 친절했다.
"따님과 결혼하고 싶으니 허락해 주십시요" 라고 요청했다.
영숙 부친 왈, "진작에 나를 찾아 그렇게 말했어야지. 허락할테니 당장 결혼하게"
화통한 영숙 부친이다.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고교 동기동창
내 친구 김봉기의 첫사랑이자 마지막사랑 이야기는 이제 그만 막을 내린다.

지금 김봉기는 손주들의 사랑을 받는 노신사 할아버지가 되었고 점잖고 품위가 넘치고 친구들에게 화를 낸적이 없는 자랑스러운 친구이다.
언제나 변함없이 상냥하고 친절하고 겸손하며 아무리 친한 친구들에게도 예의를 갖춰 말하며 존중하여 비속어를 전혀 안쓰는 기품있고
사랑받고 존경받는 친구이다.

친구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함은 물론이다.
은퇴했지만 요즘도 그는 독실한 천주교인 부부로서 아내 영숙과함께 틈만 나면 무료 진료 봉사를 열심히 다닌다.

이웃 사랑 실천이다.
조경철과 황해두가 공동 회장인 약 70명의 고교  동기동창 소모임이며
국가와 국민,  특히 후손들을 위하여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하는 "대 경복 사랑방"(약칭:대경사)의 멤버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인생에서 최후에 웃는자가 인생 최고의 승리자이고 인생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과연 내 친구 김봉기가
바로 그런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