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龍樵夫
  일본과 국학
  




우리나라에서 국학이란 말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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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국학(國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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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신문왕 2년 682년에 처음으로 국학(國學)을 두었다고 했지만
그건 후세의 성균관과 같은 종류의 교육 기관이지 학문의 한 분야는 아니다.
그 국학에서 가르친 것은 유교 경전이었고.


인터넷을 뒤지니, 국학이란 우리나라 고유의 역사, 문화, 철학 등을
포함한 종합 학문이라는 설이 나온다.


또 이야기가 나오기를 국학은 한국학과 섞어 쓰면 안 된다고 한다.

국학의 모든 분야는 한국학이지만, 한국학이 모두 국학은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더 들어 보니 한국학에는 유교, 불교가 포함되지만,
외래에서 온 유교 불교는 국학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뭐 그런 이야기다.

즉 국학은 우리 고유(?)의 것만, 거기에 외래 사상-유(儒) 불(佛)을 합친 것이
한국학이라는 이야기다. 다 들어 봐도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국학, 한국학! …한국학, 국학!....
그게 그거 아냐?

우리나라 고유의 사상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내가 국학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대학교 들어가서 인데,
그땐 국학 한다면 괜히 대단한 일 하는 것 같고,
나는 비록 못 하더라도 하는 분들 존경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요즘 국학이란 용어가 혹시 일본 막부 때 만들어 낸 개념
-그 국학(國學)을 빌려다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신라 신문왕 때 국학(國學)은 학문이 아니라 교육 기관이란 말을 이미 했다.
어디나 그 나라의 역사, 사상, 언어, 지리, 통틀어 영국학이니, 인도학이니,
독일학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국학은 경우가 좀 다르다.


만일 우리가 일본에 수입된 용어-국학을 쓴다면, 유불(儒佛) 빼고,
-음 도교도 빼야지. 도교는 무속과 완전히 결합되어 분리가 쉽지 않을 텐데,
어쨌거나 -우리 고유 사상만 따지는 게 맞다.
일본 국학이란 게 그런 거다.
그 ‘우리 고유 사상(?)”에 과연 알맹이가 있는 지는 또 다른 이야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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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학(國學; 고코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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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마리우스 B. 잰슨 (Marius B. Jansen)의 ‘현대 일본을 찾아서’
(The Making of Modern Japan)(출판사: 이산) 중 국학 부분 일부 발췌 요약이다.



소위 국학(國學; 고코가쿠)은 한학(漢學, 간가쿠)에 대한 대립 용어였다.
한학(漢學)이란 두 말할 것도 없이 유교 경전 연구다.

17세기 덕천(德川) 막부 초기,
일본 고대부터 전해 오는 시가(詩歌)에 관심 있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유교의 형식적 교훈 주의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초기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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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공자나 붓다의 가르침을 침범하려는 것도 도덕적 판단을 간과하려는
것도 아니다. 시의 목적은 단지 인간 존재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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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서기 759년 편집되었다는 만엽집(萬葉集, 만요슈) 연구를 하였다.
신관의 아들인 가다노 아즈마마로(荷田春滿 1669-1736)는

‘만엽집의 시들은 중국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그 시는 우리 고대
유산의 자연스러운 발로이며 우리 신주(神州)의 목소리다.’ 라고 하였다.


요기까진 좋았다.
외래 문물에 대한 반동으로 자기 고유색을 찾으려는
노력은 언제 어느 문명에서 있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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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 19세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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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 1776-1843)라는 골치 아픈 인물이 있었다.

17세기 덕천 막부 초기 만엽집이나 연구하는 국학(國學) 그룹이
히라타(平田)에 와서 고대의 기원(祈願)과 마쓰리고토(祭事)를 강조하는
종교적,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는 뭐든지 일본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히라타는 한때 의사 수련을 받았고, 네덜란드에서 나가사키로 들어 오는
책을 통해 약간의 서양 의학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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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모든 나라에 의학 지식을 가르쳤으나 고결한 일본은 일본보다
더 오염된 나라들의 의학만큼 많은 치료법을 만들어 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사악한 외국의 교리를 접하여 자신의 고결함에 손상을 입은 뒤부터
일본은 외국의 치료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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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것은 외국에서 쓸 만한 것은 다 받아 들이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외국에서 쓸 만한 것은 무엇이든 다 일본 것이라고 우긴다는 점이다.

천문학에서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을 듣자, 그 이론이 바로
아마테라스(天照大神)의 위대함을 증명한다고 주장하고,
어떻게 어떻게 들어 온 바이블을 통해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듣자,
일본은 (그런 큰 홍수를 경험한 적이 없으므로)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주장하였다.

히라타는 또 주장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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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은 모든 지식의 강이 모여 이룬 바다로 그 어떤 지식보다 우월하다.
중국뿐 아니라 인도와 네덜란드의 학문조차 화학(和學)이라고 해도 된다.
모든 일본인이 이 사실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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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착각은 이북에서도 자유란 말이 유행한 적 있는데,
히라타의 주장은 거의 정신병 수준이었다. 문제는 히라타 국학,
그 영향력이 일본의 광범위한 농촌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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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타 국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농촌 독자들 속으로 파고 들었으며
간행물과 서적에 자신들의 사상을 피력했다. 그들의 책력(冊曆)은
신도의 의식에 관한 내용과 농사에 유용한 조언을 함께 담고 있었다.
국학의 전도사들은 또한 그런 가르침이 마을 지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도록 실용적이고 유사 과학적인 조언을 마구 쏟아 냈다…..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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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일본의 국학 전통은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국학은 고학(古學)에서 시작하여 문헌학적 엄밀성을 갖춘 기념비적인
많은 연구 성과를 낳았으나 국학의 지도자들은 황당무계한 주장의
무비판적 수용을 옹호했다.

국학은 태고의 일본이 간직했던 진실함이 외국, 특히 중국 사상에 의해
오염된 것을 개탄하는 한편 유용해 보이는 외국 사상은 무엇이든
원래 일본 것이라고 천연덕스럽게 주장했다. 골치 아픈 것은 외국 사상을
입맛대로 취하고는, 외국인에 대한 경멸은 경멸대로 계속하는 점이다.

이 팔푼이 같은 주장이 명치 유신을 일으킨 동력 중 하나였다.
명치 유신이 이것으로 다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주요 축 중 하나였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명치 유신-대정 봉환을 주장할 때는
그렇게 신도(神道)를 앞세우더니 정작 정권을 잡자
철저한 서양화의 길을 걷는다.

그렇다고 국학-신도가 없어지냐 하면 그건 아니고,
언제든 필요하면 또 나오는 것이다. 하여튼 이상한 나라다.


예전 정신문화연구원이 ‘국학중앙연구원’이 아니라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2013-03-31 17:30:01 / 222.107.9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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