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龍樵夫
  프란치스코와 조토(Giotto)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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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본 초부(樵夫)의 블로그에 가서 읽는 것이 좋겠다.

http://blog.daum.net/robustus/16887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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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와 조토(Giotto)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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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로 선출된 제266대 교황의 공식 명칭이 '프란치스코'다.
‘프란치스코’에 대하여 언론마다 해설 기사가 나온 바, 가장 친절한 것은
오마이뉴스 가 아닌가 하여 다음에 그 링크를 붙인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43841

물론 위키피디아 찾으면 아주 자세히 나온다.

http://ko.wikipedia.org/wiki/%EC%95%84%EC%8B%9C%EC%8B%9C%EC%9D%98_%ED%94%84%EB%9E%80%EC%B2%B4%EC%8A%A4%EC%BD%94


그러나 여러 사람이 써서 그런지 문장이 두서가 없고 골치가 아프다.
오마이뉴스에 나온 것만 읽어도 면무식(免無識)은 될 것 같다.


그런데 종교적으로는 의미가 달리 있겠지만,
나는 성 프란치스코 하면 아시시에 있는 성당과 벽화가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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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Ass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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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는 이탈리아 반도의 척추를 이루는 아펜니노 산맥
동쪽 기슭에 있는 인구 26,000 의 소도시다.


사진: 구글 지도에서 본 아시시(Assisi)

이 아시시에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 있다.


사진: 성 프란치스코 성당 상부(Upper Church)
언덕에서 보면 이렇게 아담하지만, 언덕 아래에서 보면 꽤 크고 높다.


사진: 성 프란치스코 성당 전경

1226년 성 프란치스코는 죽어 가며 수바시오 언덕에 묻어 달라고 당부한다.
이는 골고다-곧 해골 언덕에서 숨을 거둔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함이니, 당시
아시시 시민들은 수바시오를 지옥의 언덕(Colle d’inferno)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1228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프란치스코를 시성(諡聖)하고,
그가 묻힌 수바시오 언덕에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초석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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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성당(San Francesco Basilica)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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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로 보이는 상부와 그 아래 하부-모두에 벽화가 가득 차 있다.


사진: 성 프란치스코 성당 상부 내부

성당 상부(Upper Church) 벽에 르네상스의 선구자 조토(Giotto di Bondone;
1267-1337)가 성 프란치스코의 일생을 프레스코로 그려 놓았는데
마티스는 그 벽화를 본 순간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조토의 벽화 앞에 서는 순간…주제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기운을 감지했다. 선과 구성과 색이 분출하는 기운이었다.
-앙리 마티스 1907년 7월’

마티스가 감명 받은 것은 특히 청색으로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시시 성당에 조토가 사용한 청색을 ‘조토 블루’ 라고 한다.)


사진: 마티스 작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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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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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26일 리히터 규모 5.7의 강진이 아시시 일대를 덮쳤다.
성당 상부가 훼손되고 당연히 벽화도 엉망이 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 복구 과정이다.

천정에서 무너져 내린 1,276톤의 낙하물을 고운 체에 쳐서 색이 남아 있는
30,000 여개의 흙덩어리를 골라 냈고, 그 가운데 12,000 여 개의 채색 부위를
제자리에 맞추는 데 성공하여, 1999년 11월 재개장한 것이다.


사진: 성 프란치스코 성당 상부-복원된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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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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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2년 이탈리아의 움브리아 지방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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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시(幻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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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년 프란치스코는 당시 많은 젊은이들처럼 기사가 될 마음으로
이탈리아 남부 풀리에로 갔다. 그러다 스뽈레또라는 곳에서 꿈을 꾼다.


사진: Legend of San Francis; 3 Dream of the Palace.
Fresco 270x230cm, Upp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프란치스코가 밤에 잠들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장식된 궁정을 보았다.
프란치스코가 이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냐고 묻자,
모든 것은 자신과 자신의 기사들을 위한 것이라는 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 온다. 프란치스코는 아시시로 돌아 간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친구들과 어울려 사치스럽게 연회를 연다.
그도 지겨워 지자 아시시 변두리를 배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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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아노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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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년 아시시에 다미아노 성당이 있었다.
성당은 너무 가난해서 십자가 앞에 불 밝힐 기름 살 돈도 없었다.


사진; Legend of St Francis;4 Miracle of the Crufifix,
Fresco, 270x230cm, Upper Church, Sam Fracsesco, Assisi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데,
'프란치스코야, 가서 나의 집을 고쳐라, 이렇게 쓰러져 가는 것이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 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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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을 포기하는 프란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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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와 갈등이 일어났다.
아버지 피에트로는 프란치스코가 성당 수리를 위해 구걸하며 돌아다니고,
거지들과 어울리며 돈을 주는 모습을 못마땅히 여겼다.

피에트로는 프란치스코를 시 집정관에게 데리고 가 상속권을 주지 않겠다 고 하였다.
그러나 종교가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집정관은 개입하기를 꺼려 한다.
그리하여 가까운 주교관에서 재판이 열렸다.

주교는 프란치스코가 가진 돈을 아버지에게 돌려주라고 권유하였다.
이에 프란치스코는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고, 옷과 돈과 가진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


사진: Legend of St Francis;5 Renunciation of Worldy Goods
Fresco, 270x230cm, Upper Church, Sam Fracsesco, Assisi

옷을 벗어 아버지에게 돌려주며, 재산과 땅을 포기하며 말하였다.

“이제까지 나는 당신을 나의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나와의 연을 끊으셨으니 지금부터 나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십니다.”

아버지 피에트로는 당황한 채로 집에 돌아갔고, 프란치스코는 아시시를 떠났다.
가는 길에서 강도의 습격을 받자, 자신이 위대한 왕의 사자라고 말하였다.
강도들은 그를 정신병자로 생각하여 구덩이에 던져 넣고 떠났는데,
프란치스코는 그럼에도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206년 여름 프란치스코는 아시시로 돌아 온다.
프란치스코의 삶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생겼고, 수도회가 생겨났다.
프란치스코는 이들을 ‘작은 형제들’이라고 불렀는데, 그 숫자가 꾸준하게 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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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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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Legend of St Francis;6 Dream of Innocent III
Fresco, 270x230cm, Upper Church, Sam Fracsesco, Assisi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꿈을 꾸었는데 프란치스코가 허물어져 가는
라테라노 대성당을 무너지지 않도록 떠 받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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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앞에 선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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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는 1213년 모로코 선교를 시도하였고, 시리아와 아프리카에도
선교사로 가기를 원했지만 파선과 질병으로 모두 좌절되었다.

그러다 1219년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로 갔다가 술탄 말렉크 알 카멜을 만나
십자군 전쟁의 해결을 위한 대화를 시도했으나, 포로 신세가 되었다.

그 뒤 1220년에 예루살렘 순례를 하고 시리아까지 선교 활동을 벌였는데
이로써 예루살렘에 ‘작은형제회’가 살기 시작하였다.


사진; Legend of St Francis;11 St Francis before the Sultan (Trial by Fire)
Fresco, 270x230cm, Upper Church, Sam Fracsesco, Assisi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술탄의 제사장들과 함께
타오르는 불 속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술탄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술탄은 프란치스코를 존경하였으나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것은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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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에게 설교 (Sermon to the Bi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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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Legend of St Francis;15 Sermon to the Birds
Fresco, 270x230cm, Upper Church, Sam Fracsesco, Assisi

프란치스코가 설교하는 동안 새들은 기쁨을 놀라운 모양으로 나타내 보였다.
프란치스코를 빤히 쳐다보면서 부리를 벌리고 목을 쭉 펴고 날갯짓을 했다.

(이 ‘새들에게 설교’는 서양 기독교에서는 꽤 유명한 에피소드다.
공식 설명은 위와 같지만 프란치스코가 사람들이 자기 말을 못 알아 듣자,
에잇 차라리 새들에게 하는 게 낫겠다고 하여 모아 놓고 했다는 설도 있음.
새들이 기뻐하기 보다는 왜 우리한테 와서 핏대 올리는 거요? 라고 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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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Stigmat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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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이란 잘 듣던 말이 아니라 약간 헷갈린다.
더 들어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릴 때 입은 상처라니
한자로 ‘五傷’으로 쓸 것 같다. (유교에서 오상은 五常-仁義禮智信 이다)
영어로는 Stigmatization 이다.

하여간 프란치스코에게 그 ‘오상’ 현상이 일어 났다는데,
그걸 또 믿을 만한 사료들이 입증한다니 믿어야지 어쩌겠나?

1224년 8월 15일부터 프란치스코는 라베르나 산에서 단식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인 9월 14일이 지난 9월 17일 프란치스코는 기도 도중
갑자기 ‘세라핌’을 목격하고 그리스도가 받은 다섯 상처와 똑 같이
자신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입었는데, 이것은 로마 가톨릭 최초로
공식 확인된 성흔-오상(Stigmatization)이라고 한다.


사진; Legend of St Francis;19 Stigmatization of St Francis
Fresco, 270x230cm, Upper Church, Sam Fracsesco, Assisi

그림 왼쪽이 프란치스코,
오른쪽 상단-위는 사람, 아래는 새인 동물(?)이 세라핌 이다.

말로 세라핌(Seraphim)이라고 해도, 보통 잘 들어 보지 못하였을 텐데,
서양 중세 이야기 읽다 보면 가끔 나온다. 구약 이사야 서에 한번 나온다는데
한국어 성경에서는 ‘스랍’으로 쓴다고. 하여간 천사들 중 제일 상위다.

그럼 천사가 기독교 교리에서 어떤 위치인지?
천사가 교리 상 의미를 가지기는 하는지?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면…

프란치스코는 이 오상 현상 후 건강이 급속히 안 좋아져
눈이 반쯤 멀고 심한 병까지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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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년 10월 3일 토요일 해질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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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는 동료 수도자들에게 요한 복음서 수난기를 읽어 달라고 청하고
시편 141편을 기도한 후 “어느 누구도 죽음의 포옹에서 달아날 수 없습니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사진: Legend of St Francis;22 Verification of the Stigmatization
Fresco, 270x230cm, Upper Church, Sam Fracsesco, Assisi

프란치스코의 시신 주위를 사람들이 에워 싸고 있다.
가운데 무릎을 굽힌 사람은 기사 ‘예로니모’로 프란치스코의 양손과 발
옆구리를 만지며 오상(Stigmatization)을 확인(Verification)하고 있다.
2013-03-15 17:35:12 / 222.107.9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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