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의 이모저모

다음은 행사 당일의 모습을 스케치한 글이다.

(Prelude)

10월9일 토요일 우리의 재상봉 행사는 쾌청한 가을 하늘아래 시작되었다.
일부에서 우려한 것처럼 많은 동문들이 참석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속으로 생각하며 우리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모교로 향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안국동에서 택시를 타고 경복고등학교를 가자고 하니
택시는 청와대옆 길로 해서 세검정길로 올라가는데 좌회전이 안되어
후문앞에 내려서 우리는 잠시 걸어야 했다.
원 학교가는 길도 제대로 못 찾아가다니.

첫눈에 들어온 모교의 모습은 옛날 그대로였다. 교문과 꾀꼬리 동산과
아스팔트 길, 시계탑 등등.이곳 저곳을 둘러보니 모습이 많이 바뀐 곳도
많았다. 우리의 상징이었던 그 꾀꼬리 동산의 콩크리트 의자와
칠판은 없어지고 간판만 덩그러니 걸려있고 …
학교 교정 여기저기를 보수공사 하느라고 약간 어수선한 가운데 우리는
행사장인 강당에 도착했다.

그래도 변치 않고 있는 본관(1호관)의 벽돌 건물과 담장이 넝쿨 그리고
그 앞의 푸른 잔디는 옛날이나 다름없이 우리를 반겼다.

(Reception)

4시 무렵이 되자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던 동문들은 30주년 기념식
행사장인 강당 로비에 마련된 접수창구에서 미모의 Receptionist의 안내를
받아 방명록을 작성하고 명찰과 동창회 주소록과 행운권을 받았다. 이들
묘령의 아가씨(?)들은 마침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NGO대회 때문에
초청하지 못한 Event Girl을 대신해 동문들 부인중에서 가장 미모가
뛰어난 오병연 동문과 원승환 동문의 부인들로서 이날 수고를 해주셨다고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옛 친구들의 모습이 점차 늘기 시작했고
행사 시작 시간인 5시가 되자 100여명을 넘어섰고 초청된 은사님들도
모습을 보여 옛 제자들과 그 동안에 지내온 생활과 옛 추억등
환담을 나누고 계셨다.  여든이 넘으신 나이에도 사진작가 협회일에
관여하시면서 사회활동을 하시는 박규서 선생님은 수술 때문에 얼굴이
많이 변하신 모습이었고,카랑카랑하신 목소리로 국어를 가르치시던
마종진 선생님과 하얗고 깨끗한 모습의 이한우 선생님, 백묵을 손에
굴리시면서 열심히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한덕현 선생님,DNA/RNA등
새로운 생물용어를 가르치시던 김근형 선생님, 열쇠표시와 오이여(외어)로
독일어를 열강하시던 유병국 선생님, 학생활동주임 하시던 작은 키의
박용식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뚱뚱하신 몸을 한결 홀쭉하게 만드신
성낙용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김기원선생님(상업),류기선선생님(지구과학),
이종우선생님(영어),이현재선생님(화학)은 거의 옛날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셨다.

(기념식)

5시부터는 졸업30주년 기념식이 동창회 박병우 총무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국민의례에 이어 이미 작고하신 선생님과 동문들에 대한 묵념시간에는
모두들 엄숙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이어서 박병우총무의 경과보고에서는
1969년에 476명이 졸업하여 22명이 벌써 유명을 달리했으며 전세계
13개국에 나가 생활하고 있는60여명의 해외거주 동문과 연락이 안되고
있는 43명의 동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문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현황을 보고하고 소재파악이 안되는 43명의
동문들을 지속적으로 찾아 서로 연락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어서 44회 동창회장인 허동녕회장(사업관계로 북경을 방문중임)을
대신해서 양무일 부회장이
기념사를 하였으며, 모교 황홍순 교장선생님의
환영사,총동창회 김광천 이사님의 축사가 이어졌다. 참석하신 은사님을
대표해서 박규서 선생님께서는 격려사에서 나이가 들수록 건강을 제일로
생각하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편하게 먹고 취미생활을 할 것을
권해 주셨다.
총동창회에 대한 장학기금이 전달되었고,모교 발전기금(도서기증)도
전달되었다. 끝으로 오래간만에 교가를 다같이 부르면서 기념식을 마쳤다.
대은암 도화동 이름난 이곳, 북악을 등지고 솟아난 이집…

기념식을 마친 동문들은 강당 입구에서 은사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만찬 및 여흥이 진행될 체육관으로 향했다.

(만찬 및 여흥)

체육관에는 이미 20여개의 대형 원탁 테이블이 준비 되어있었으나
참석한 동문들로 가득 차서 늦게 도착한 동문들을 위해 좌석을
추가해야만 했었다. 우선 은사님을 모시고 졸업30주년 기념 케이크를
자르며 박규서 선생님의 제의로 다같이 30주년을 축하하는 건배를
하였다.
이날 사회는 원승환 동문과 초청MC에 의한 공동 진행이었다.
부페식으로 준비된 만찬을 들면서 각 테이블별로 정담을 나누었으며
식사가 마무리 될 무렵 1반부터 차례로 무대위로 나와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였다.
식사를 마친 후 은사님들께서 귀가할 시간되어 기념품을 전달하고
선생님들에 대한 아쉬운 작별을 고하였다. 10년후 40주년기념 행사에는
지금처럼 여러 선생님들이 참석하실 수가 어렵기 때문에 더욱 작별이
아쉬웠다.

본격적인 여흥에 들어 가기 전에 이번 행사의 기념물로 제작한 모엔
(Moen)의 종이 배포되고 그에 대한 유래가 설명되었으며 홍인식 동문이
기증한 모자도 배포되었다.
동문들이 협찬한 80여가지의 경품을 중간중간 추첨하고 가위바위보
게임이나 풍선불기등 간단한 게임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장기자랑에
들어선 여흥시간에는 먼저 조성호 동문의 "사랑을 위하여"를 시작으로  
이상완 동문의 "Too Young" ,민병구 동문의 "내가 만일…"등 흘러간 가요와
pop song및 최근 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repertory를 보여주었으며,
특히 강신철 부부의 "친구여"는 부부가 호흡을 맞추고 부창부수를 하여
오랫동안 노래방에서 닦아온 실력과 풍부한 성량으로 많은 동문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용석 부부의 "남행열차",양무일 부부의 "진정 난 몰랐었네"가 이어지고
노원종 부부가 "Cotton Field","사랑의 트위스트"등을 부를 때는 무대는
춤판으로 변해 버렸다.
5반 동문들의 "인생은 나그네길"이 불러질 때 조성호 부부가 보여준
볼룸 댄스는 원숙미 바로 그 자체였다. 박병우 동문의 "존재의 이유"와
김희창 동문의 "그리운 금강산'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노래 중간 중간에는 학창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선생님의 별명을 불러 혼이 난 이야기등등 잊혀지지 않는 옛날
이야기 하면서 선생님들의 별명을 떠올리곤 하였다.
"목토왕, 마씨, 까만물리, 한바보,짱구, Vocu-burary, 째째(파리) 등등 "
(선생님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성함보다 별명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이유일까요?)
에피소드의 하이라이트는 배종화 동문이 기억해낸 이야기.
"김선생님의 수업 시간중에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맹동호 선생님
(이미 작고하셨슴)이 바리깡을 들고 두발검사를 하러 들어왔다. 김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칠판에 계속 판서를 해 나가시고 있었다.
이윽고 김선생님이 판서를 마치시고 뒤를 돌아본 순간 열심히 노트에
옮겨 적고있는 학생들의 앞머리에 시원한 고속도로(?)가 여기저기 생긴
것을 보았다. 맹선생님이 작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가시자 김선생님은
말없이 칠판에다 큰글씨로 쓰셨다.  "猛虎渡江證" 이라고 "

드디어 장기자랑이 끝나고 오늘의 MVP로 강신철 부부가 선정되는 순간
장내는 환호의 종소리로 가득했으며 앵콜 송으로 "만남"을 다시한번
멋들어지게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MVP 상품은
가정용 멀티미디어 노래방기기였다.
술과 노래와 춤과 이야기로 즐거움을 나누던 시간도 아쉽게 흘러
예정된 9시를 훨씬 넘겨 11시가 되도록 끝날줄 몰랐다.
MVP시상을 끝으로 우리는 교가를 다시 한번 합창하면서 10년후
40주년인 2009년에도, 또 44주년인 2013년에도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같이 함께 참석하자고 굳게 굳게 다짐하면서 이날의 행사를 모두 마쳤다.
(김성환 작성)  

 

 

회장 인사말

안녕하십니까

오늘 졸업 30주년을 맞아
여러 선배님과 은사님들을 모시고
많은 동문들이 뜻깊은 자리를 함께 가질 수 있게 되어 깊은 감회와 함께
참으로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4계절 중 가장 바쁜 가을, 그 중에도 가장 바쁠 토요일에
후배들의 자리를 빛내주기 위해 어려운 걸음을 하신
모교의 황홍순 교장선생님 그리고 김광천 총동창회 이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저희들을,
가정에서는 좋은 가장,
사회의 일원으로써는
훌륭한 기둥이 될 수 있도록
이처럼 멋지게 가르치고 키워주신 은사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또한 죄스러움을 느낍니다.
졸업한 지 30년이 되도록,
그 동안 자주 찾아 뵙지 못했고, 또 모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구나 이해해주시고
용서해주십시오. 예전에도 그러셨던 것처럼요.
선생님앞에선 언제나 부족하기만 한 저희들입니다.


졸업 30주년을 기념하여 이런 재상봉 행사를 갖는 것은
참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0년은 한 세대가 바뀌는 기간입니다.


정말로 우리는 한 세대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참화와 분단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그리고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던 극심한 빈곤들로부터
간신히 조금쯤 벗어났던 그런 시절에 만났던 우린
30년전에 헤어졌습니다.
그리곤 사회 각처에서, 세계 곳곳에서 헤어져 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만났습니다.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주름도 생겼고, 흰머리도 늘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경주마처럼 강한 힘이 느껴지던 체형도 무너졌습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이니까요.

그러나 모두들
밝고 여유 있고 자부심 느끼는 얼굴들입니다.
내 손으로 우리나라를 이처럼 살지게 하고
선진국대열에 올려놓았다는 자부심...
자식들을 30년전의 내 위치만큼 키웠다는 보람...

그처럼 인색하던 자기자신에 대한 칭찬을
한 번쯤은 해도 좋을만큼 열심히 살아 온 세월이었습니다

이제,
오늘 뜻깊은 날을 우리가 함께 맞을 수 있도록 해주신
은사님과 선배님들께
그 동안 못했던 인사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또 언제나 옆에서 지켜주던 아내의 고마움에
손을 꼭 잡아주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자기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